우리는 신체의 오감과 기술의 성질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구성해왔다. 특히 기술은 우리의 생활 전반을 편리하게 해주었고, 우리가 무심코 상상하던 일들을 실현시켜주었다. 20세기 초반 무렵 발명된 비행기로 우리는 지구 곳곳을 여행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우주여행을 꿈 꾸게 했다. 1969년 7월, 엄청난 인력과 자본을 투입한 끝에 아폴로 11호는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했다.
오늘날 세계는 물리적인 차원을 넘어서 손으로 지각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컴퓨터, 태블릿 PC, 스마트폰의 사용자(user)로서, 디지털, 온라인, 스크린으로 세계를 손질하며 탐구해나가고 있다. 우리는 ‘정체성’이라는 삶의 차원에서 간단한 클릭과 터치로 세계를 재구성하고 있다. 그래서 세계는 굉장히 작고 좁지만, 그렇기에 가장 크고 넓다. 당신의 하루 일과를 생각해보자.
Subscale을 구글링하면, ‘부척도’라는 다소 생소한 단어를 안내 받는다. ‘금속 표면 하단에 일어나는 산화반응’. 공학에서 사용되는 용어이지만, sub와 scale의 합성어로 이해한다면, ‘대신하는 규모’로서 계속해서 규격이 변형될 가능성을 지닌 무엇을 가리킨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세계가 비물리적으로 시각화되는 움직임과 닮아있다. 설정된 기본 값(deafault values)은 사용자가 처한 시공간의 조건과 개별적이면서 복수적인 선택의 상황에서 무용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본 값이라는 가정은 반드시 존재하지만 쉽게 상실될 수도 있다. 이는 근대적 시각 체계인 ‘선형 원근법’의 해체로서 간단명료하게 설명될 수 있겠지만, 충분해 보이진 않는다.
이번 전시에서 정희민, 추미림, 허연화는 각자의 분석적이고 유희적인 알고리즘으로 생성/수정되는 디지털 이미지를 어떠한 상태로 구현할까 고민했다. 기본 값으로 설정된 갤러리 룩스에서 각자가 시각화했던 디지털의 면면을 불러오는 과정에서 작품의 규모와 매체가 선택되었다. 작품이 제작되는 각각의 단계를 살펴보는 것은 꽤나 유용하겠지만, 이는 간편하고 확정적인 설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몇 가지 단서를 남겨놓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하며, 계속해서 변형될 가능성을 지닌 단서(들)이 되기를 기대한다. 선택과 틀(frame). 색면으로 평면화되는 공간. 무한한 확대. 남겨지는 가벼운 픽셀. 작고 귀여운 드로잉. 납작한 선. 솟아오르는 면. 양감을 찢는 윤곽선의 이질감. 이와 같은 단서(들)은 다시금 오늘날 우리 세계가 재구성되는 움직임으로 되돌아갈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회화적이고, 조각적이고, 사진적인 가능성의 차원에서 오늘날 우리 미술에서의 디지털 감각을 상상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