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ATELLITES: 위성들
  • 추미림 Chu Mirim
  • 2020. 11. 5 - 11. 29  

부유하는 자들의 춤

이성휘(하이트컬렉션 큐레이터)

 

추미림은 도시의 일상적 풍경을 관찰하여 기하학적인 평면작업이나 설치작업으로 풀어왔다. 그는 컴퓨터 그래픽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픽셀아트 같은 유닛들을 단독 또는 조합하여 도시에서의 일상을 표현해 왔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작가에게 도시의 환경과 삶의 경험들이 작업의 기반이 되는 것은 자연스럽고, 인터넷과 컴퓨터 인터페이스에 익숙한 세대로서 시각적인 사고 과정에 이러한 디지털 매체의 영향을 받는 것 또한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번 갤러리룩스에서 열린 개인전 《Satellites: 위성들》에서는 서울 및 주변 도시의 아파트 단지, 빌딩숲, 도시 간의 진출입로와 주변 풍경 등 도시에서의 일상과 풍경을 다룬 작업들이 소개되었다. 특히 이 전시는 작가가 유년 시절부터 서울의 위성도시들을 맴돌며 살아온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그는 우연히 주민등록초본에서 자신의 주소 변천사를 확인하게 되었는데, 이 내역은 개인의 이동 이력이었을 뿐만 아니라 지난 30여 년 동안 서울과 서울 주변의 신도시 개발, 부동산 정책의 변천사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가족의 삶을 반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전시는 한 개인의 추억으로 머무르지 않고, 대도시 빌딩 및 아파트숲에 둘러싸여 살아온 많은 이들의 경험과 기억, 그리고 열망을 자극한다.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신화를 쫓아 허우적대는 우리 자신과 주변인들에 대한 씁쓸한 경험과 감정까지 떠올리게 만든다. 작품들이나 전시 자체는 작가의 유년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나 도시의 삶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따뜻한 유머가 많이 담겨 있어서 낭만적인 느낌마저 들지만, 부동산을 둘러싼 고단한 현실을 잊게 해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픽셀과 창

추미림은 자신을 도시(오프라인)와 웹(온라인)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으로 표현한다. 도시라는 물리적 환경만큼이나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연결된 온라인 환경이 자신의 삶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는 미술작가로 활동하기에 앞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을 먼저 시작했고, 그만큼 컴퓨터와 인터넷은 그에게 친숙한 수단인데 단순한 도구에 머무르기보다는 일종의 컴퓨팅 사고(computational thinking)를 가능케 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추미림은 자신의 컴퓨터 바탕화면을 일종의 드로잉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작업에 필요한 모든 창들이 열려 있는 바탕화면이야 말로 모든 작업의 소스이자 시작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인터페이스(Interface)>(2020)라는 작품에서 작가는 여러 개의 창과 그래픽 유닛, 그리고 그리드선을 연상시키는 화면을 구성하여 이 화면이 자신의 바탕화면임을 암시하였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모니터 화면 비율처럼 가로로 긴 방향으로 캔버스를 사용했다면 훨씬 더 직접적으로 컴퓨터 바탕화면을 연상시킬 수 있었겠지만, 작가는 세로 방향으로 캔버스를 사용했고 그 크기가 웬만한 방의 창문 크기만하기 때문에 오히려 건물의 창을 대입해서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캔버스 속 그림들은 창을 통해서 내다보는 도시의 구획과 건물들처럼 보이며, 이 또한 작가의 드로잉북인 컴퓨터 바탕화면에 펼쳐 있는 것이기에 자연스러워 보인다. 

 

사실 창이라고 하는 건축 공간의 프레임은 추미림의 작품 화면에서 유용한 프레임이 되는데, 건축물의 외관이나 창에서 따온 기하학적 도형이 화면의 조형적인 요소이자 내러티브의 틀이 된다. 이번 전시에서 추미림은 아파트 단지 입면도와 같이 연출한 <캐슬(Castle)> 시리즈(2020)를 선보였다.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를 연상시키는 작품제목은 부동산에 투영되는 계급의식을 상기시키지만, 그 안의 내용은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작가의 낭만적인 공상으로 채워져 있다. 정사각형, 직사각형, 평행사변형, 삼각형 등 다양한 크기의 도형이 도형자처럼 재단되어 있는 산뜻한 색상의 아크릴 커버는 빌딩숲이나 아파트 단지의 외피이자 이야기의 프레임이다. 각 도형마다 건물 내외부에서 목격할 만한 장면이나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는데, 어떤 이미지들은 스마트폰 채팅 어플의 이모지(emoji)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호에 가까운 그림들도 있기에 구체적인 내용을 일일이 추측하지는 못하지만, 전체적으로 온/오프라인 속 삶의 일면이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다. 이와 비슷하게 영상작업 <윈도우즈(Windows)>(2020)에서도 정사각형, 직사각형, 계단형태 등 여러 모양의 창을 만들고 각 프레임마다 그 형태에 맞춰 애니메이션 영상이 돌아간다. 이 영상 속 이미지들도 건축물과 컴퓨터의 창을 통해 볼 수 있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파트 단지, 네비게이션 위성 지도 화면, 혜성의 궤도, 이모티콘 같은 이미지들이다. 이 영상 중에서 작가는 위성지도를 픽셀이 다 보일만큼 확대한 장면을 보여주는데, 이는 다분히 의도적이다. 그간 추미림의 작품은 간결한 도안이나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컬러링 때문에 컴퓨터 그래픽 출력물로 오해를 받은 적도 있다. 특히 그의 평면 작업은 픽셀에서 출발한 회화로 소개되곤 하는데 마치 디지털 원안이 있는 것처럼 오해를 살 수 있다. 그러나 전시 작품들 중 화가의 손이 아닌 마우스로 그려진 디지털 이미지는 이 영상이 유일하다. 다른 평면 작업들은 작가가 손맛 가득하게 종이 위에 그리고 칠한 아날로그한 작업들이다. 한편, 그의 회화를 픽셀에서 출발했다고 말할 때 종종 ‘픽셀 = 정사각형’이라는 선입견도 포함되곤 한다. 엄밀히 말하면 픽셀은 정사각형으로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래픽 화면상의 포인트로 디지털 그래픽 화면의 최소단위일 뿐이다. 하지만 픽셀이 연상시키는 비트맵 이미지와, 흔히 픽셀이 깨졌다고 표현할 때 이미지 해상도가 떨어지며 생기는 격자무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픽셀을 정사각형으로 간주한다. 이 픽셀을 추미림은 대도시 건물의 창과 연결 지어 도시의 일상을 투영하는 창으로 확장한 것이다.

 

부유하는 자들

이번 전시에서 추미림은 서울의 위성도시들이 개발될 때마다 이사를 다니며 목격한 위성도시의 조건과 환경, 그 곳에서의 생활에 대한 기억을 작업에 투영시켰다. 알다시피 위성도시는 대도시의 기능을 분담하는 주변 도시를 일컫는 표현으로 중심 도시의 인구를 분산시켜 주거를 분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 대도시 주변의 소도시들은 도시 기능이 자족적이든, 의존적이든 대개 위성도시의 지위에 있는 편이다. 특히 서울의 경우, 1990년대 분당, 일산을 시작으로 하여 불과 30여 년 만에 신도시라 통칭되는 위성도시들이 우후죽순 개발되었다. 이 시기 수도권에서 성장한 추미림은 부친의 직장 및 부동산 투자 계획과 맞물려 이사와 전학을 거듭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만 했다. 그는 성남, 분당, 수지 등 자신이 이사 다녔던 신도시들의 풍경이 획일적인 도시계획 하에 일사천리의 속도로 조성되었음을 지적하며, 이 인위적인 도시들에 정착하지 못하고 정서적인 유대감도 획득하지 못한 채 부유하듯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유년 시절을 회상하였다. 그의 <스윗 섹션(Sweet Section)>(2020)은 대한민국 부동산 판타지의 종착지인 서울을 연상시킨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실제 서울보다 훨씬 느슨하고 여유 있는 부감 형식의 이 작품은 핑크색으로 칠한 바탕 때문에 이곳이 정말 달콤하고 안락한 도시일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작품 좌우로 걸려 있던 <아이시 문(Icy Moon)>(2020)과 <더 래빗 홀(The Rabbit Hole)>(2020)은 서울과 연결된 위성도시에 대한 작가의 단상이다. 획일적인 도시계획은 작가에게 토성의 얼음 위성 안셀라두스처럼 냉정한 온도로 기억되었고, 지역 주민들만 아는 도시와 도시를 잇는 지역의 작은 통행로는 주민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플라이어.002(Flyer.002>(2020)는 지워진 슬로건과 말풍선 자리에 위례, 미사 등 어떤 도시의 아파트 단지 개발에 대한 광고문구를 갖다 붙여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서울과 주변 신도시의 관계를 행성과 위성의 관계로 치환하여 생각했고, 이를 전시장 디스플레이를 통해서 시각적으로 제시하였다. 전시장 벽면에 걸린 작품들은 행성 주변을 도는 위성들처럼 몇 개의 곡선과 점들로 서로 연결되었는데, 작품들의 몽상적인 분위기로 인하여 각각의 캔버스는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별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중에서 부유하는 듯한 느낌은 <인터체인지(Interchange)>(2020)가 특히 강하다. 도시와 도시를 잇는 도로의 교차로를 표현한 이 작품은 회전 구간을 진입하거나 빠져나갈 때의 부드럽고 산뜻한 기분이 상상되는 작품이다. 공중에 떠 있는 듯 둥글게 조경이 된 나무들과 회전도로, 그 위에 오버랩 된 교차로 화살표들은 마치 앤디 워홀의 <댄스 다이어그램(Dance Diagram)>(1962)처럼 한 편의 안무를 연상시킨다. 회전도로를 따라 떠다니는 원들처럼 공중에 부유해 있는 상태에서 추는 산뜻하고 가벼운 춤이다. 서울, 주변 신도시, 어디에서도 쉬이 자리 잡기 힘든 사람들이 차라리 공중으로 부유해서 추는 춤이다. 전세난민, 호텔거지와 같은 말들이 난무하는 오늘날, 이 도시 어디에도 두 발 딛고 살 곳이 마땅치 않다면 차라리 중력을 이기고 공중 부양을 하는 상상이라도 해보는 것이다. 영화 <주피터스 문>에서 난민 수용소를 탈출해 쫓기다가 공중 부양을 하는 초능력을 가지게 된 주인공처럼 말이다. 사실 추미림은 전시장 한 켠에 자기 자신을 투영한 <버블 워킹(Bubble Walking)>(2020)을 걸어 두었다. 버블 속 캐릭터는 즐거워 보인다. 씽긋 웃는 얼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그는 큰 보폭으로 버블을 굴리며 걷고 있다. 이 버블은 부동산 버블이 아닌, 서울과 위성도시 어디든 자유롭게 부유할 수 있는 버블이다. 현실보다 조금 높은 공중에서 부유한 채로 추미림을 걷게 해주는 버블, 그 산뜻한 걸음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고단한 현실에서 상상으로 라도 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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