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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연
JAEYEON YOO (b.1988)
Based in London & Seoul
학력
2014
영국 왕립 예술 학교(Royal College of Art), MA Painting 졸업
2011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학부 서양화과 학사 졸업
개인전
2021
Great to see you, 갤러리 룩스, 서울
2019
1” Eclipse, 도잉아트, 서울
The Night is Young, 갤러리 룩스, 서울
2018
Moonlight Punch, 노블레스 컬렉션, 서울
; _ ; semicolon underscore semicolon,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 쇼앤텔, 서울
2015
You Can’t Go Home Again, 32sqm Acme 프로젝트 스페이스, 런던, 영국
2014
Home-made Disaster, Cabin gallery, 런던, 영국
2012
New Fantasia, SADI 윈도우 갤러리, 서울
The world of scare, Hello museum mini gallery, 서울
2011
F, 텀 갤러리(with Place MAK), 서울
주요 단체전
2021
Young Dreams, Aout gallery, 베이루트, 레바논
2020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챕터투 & 챕터투야드, 서울
2019
Universe of Universes, 신촌문화발전소, 서울
NOW K’ART V.2, 서울옥션강남센터, 서울
욕 욕 욕, 시대여관, 서울
EMAP 2019 [BE COLORED], 이화여자대학교, 서울
2018
더블 아트 크리스마스, LG U+ 사옥 (용산, 마곡), 서울
아트마이닝 서울 2018,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DDP), 서울
EMAP 2018, 이화여자대학교 캠퍼스, 서울
FAIR PLAY, Gallery Elena Shchukina, 런던, 영국
2017
POWER PLAY WINTER SALON, The Concept Space, 런던, 영국
PIY Painting Lounge, Sluice Biennale 2017, 런던, 영국
One Summer Night, Crypt gallery St. Pancras, 런던, 영국
Dentons Art Prize, Dentons Law Firm St. Paul office, 런던, 영국
2016
HIX AWARD 2016, Unit London Soho, 런던, 영국
Summer Arts Prize 2016, Lacey Contemporary Gallery, 런던, 영국
Blind Plural, Hundred Years Gallery, 런던, 영국
2015
Griffin Art Prize 2015, Griffin Gallery, 런던, 영국
Wells Art Contemporary 2015, Wells Museum, 웰즈, 영국
The Salon, Project Space 103, 콘월, 영국
RCA secret 2015, Dyson Gallery, 런던, 영국; 두바이, 아랍
POP LIVING, Schuwartz Gallery, 런던, 영국
The Exhibit-The Curator, The Exhibit Balham, 런던, 영국
2014
Winter Pride Award 2014, Lacey Contemporary Gallery, 런던, 영국
Launching Show, Frontline Ventures, 더블린, 영국
Launching Show, Frontline Ventures, 더블린, 영국
RCA secret, Dyson building, 런던, 영국
2013
PNTG NOV, Henry Moore Gallery, 런던, 영국
RCA secret, Dyson building, 런던, 영국
Note to self, Dyson building, 런던, 영국
Work in Progress Show, Henry Moore Gallery, 런던, 영국
2012
MUSEUM SAFARI 2, 예술의 전당 V Gallery, 서울
Art Discovery, Hello Museum, 서울
2011
In the city, 충무아트센터, 서울
2010
그림자-한편의 동화, 언더바 스페이스, 서울
Meet the artist, 금산갤러리, 파주
2009
Second Landscape, 터치아트 갤러리, 파주
수상
2017
Dentons Art Prize 2017_Shortlisted
2016
HIX AWARD 2016_ Shortlisted
2015
Griffin Art Prize_Shortlisted
Wells Art Contemporary 2015_Shortlisted
2014
Winter Pride Award 2014_ Shortlisted
Neville Burston Award_Winner

SOLITUDE
성민화 MIN HWA SUNG
성민화
Min Hwa Sung
2002
독일 베를린 국립예술대학 Kunstimkontext Master of Art
1999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국립조형예술대학 졸업(Meisterschueler)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국립조형예술대학 졸업(Diplom)
1993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B.F.A)
개인전
2021
solitude, 갤러리룩스, 서울
2019
ancilla, 상업화랑, 서울
2018
still, 영은 미술관, 경기
2017
Fade, a-lounge, 서울
2016
un_seen, 갤러리룩스, 서울
2013
Visit, Kunstverein Bellevue Saal, 비스바덴, 독일
B my love, WerkStadt.Kulturverein e V, 베를린, 독일
2011
islet;섬 1009 12/1106 09, 성북예술창작센터갤러리_맺음, 서울
2010
Temporary home, 갤러리 차, 서울
2008
Walk, 가인 갤러리, 서울
2006
Sung Min Hwa Solo Show, Walter Wickiser Gallery, 뉴욕, 미국
Haus, 갤러리정미소, 서울
2002
My favorite ways (Sung Minhwa& J Weinhold), 프로젝트스페이스사루비아다방, 서울
Wechselwirkung (Sung Minhwa&J.Weinhold), KunstvereinGueterloh, 귀터슬로, 독일
2001
I see…!, 금산갤러리, 서울
2000
I see…!, City project: Ist der Kultur das Geschlechtegal?, 슈타데, 독일
주요 단체전
2018
visible – invisible, Heritage space Hanoi, 하노이, 베트남
2015
Korea Ausstellen, Humboldt-Lab, Dahlem, Ostasiatisches Museum, 베를린, 독일
실패하지 않는 그림: 드로잉, 갤러리 룩스, 서울
Humboldtlab_Pronebuehne 7_Korea, ausstellen Museum, fürAsiatischeKunst, 베를린, 독일
2014
시간을 걷다, 닥터박갤러리, 양평
2011
Beyond Drawing, 스페이스15번지, 서울
Auf die, PapiergalleryHafemann, 비스바덴, 독일
Self-forgetfulness VS nature, 경기창작센터, 안산
2010
레지던스 퍼레이드 경기창작센터교류, 인천아트플랫폼,인천
2009
Made in Korea(하노버 국제산업박람회 동반국 문화행사), 하노버, 독일
2007
Artist book from, 21.Century National Museum of Art &History, 타이베이, 대만
경기 1번국도, 경기도미술관, 안산
2006
광주비엔날레 제 3 섹터 시민프로그램: 140만의 불꽃, 광주시립미술관, 광주
2005
Domestic Drama, 프로젝트 스페이스 집, 서울
2004
외침과 속삭임,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서울
2003
오픈스튜디오, 쌈지스페이스, 서울
2001
EmergingII Sense & sensibility, 쌈지스페이스, 서울
Art cotempraind’Asie, Passage de Ret’s, 파리, 프랑스
외 다수
레지던시, 수상 및 선정
2019
Map Artist Residency Program, 베트남
2018
영은미술관 레지던시, 경기
2015
Zitadellespandau atelier program, 독일
2013
Scholarship Bellevue SaalKunstverein Bellevue saal Wiesbaden, 독일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Artothek Wiesbaden, 독일
현대커머셜주식회사
쌈지스페이스

사계 四季
김용훈 KIM YONGHOON
작가노트
나의 이전 작업들에서부터 줄곧 지속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는 시간에 대한 감정이다.
잊혀 가는 기억에 대한 기록, 더불어 흘러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 혹은 소중함과 같은…….
‘Time in a Bottle(병 속에 시간을 담아둘 수 있다면)’을 듣고 영감을 얻은 이번<사계> 연작은 빈 병 속에 아쉽고 소중한 시간을 영원히 담아내고 싶다는 은유적 염원을 담고 있다. 시간의 확장성으로 계절을 연상시킨 과일과 조우하여 예술이 줄 수 있는 무한대의 시각적 언어로서 재해석한 병을 통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소재들에 대해서도 결코 쓸모없지 않고 그 자체로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무심한 듯 보이는 빈 병은 그 안에 담겼던 내용물과 시간의 기록들이 소멸하는 과거에서의 흘러가는 시간을 상징한다. 제철 적정 시기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면서 시간의 흐름을 일깨워주는 또 다른 오브제인 반갑고 신기한, 생생한 과일을 통해서는 현재 지금의 시간을 주목하기를 바랐다. 이렇게 대립적인 개념을 내포한 두 오브제를 또 다른 대립적 개념을 가진 빛과 그림자의 표현으로 극대화하였고, 오후에서 저녁으로 흘러가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을 재현하였던 과거 인상주의와 같이 나의 사진 속의 대상들에 강렬하게 부딪혀 나타나는 빛과 그림자가 이러한 감정의 선으로 이어진다. 또한 이전 작업과는 달리 비스듬한 이질적 배경의 구도와 촬영 당시의 감정에 대한 색감을 시각화하고자 했다.
<사계> 연작 속 두 오브제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시간이 내재하는 소중함, 숭고함… 이는 우리 인생의 많은 물음에 대한 답이 될 것이고, 또한 현재의 가치를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강 하류에서 꿈꾸기를 한 조각상 A STATUE DREAMING ON RIVER
이해반 HAEVAN LEE
작가노트
전시 “강 하류에서 꿈꾸기를 한 조각상”에서는 경계지역들을 다니며 본 풍경들을 다루는데, 이는 날이 선 분위기의 풍경 속, 대상을 관찰하며 느낀 시각적 유희를 회화를 통해 그려내고자 한다.
<금강산>은 2012년부터 진행한 <DMZ풍경 시리즈>의 연작으로 출입이 제한되거나 사진촬영이 불가능한 풍경들을 회화로 그려낸 작업이다. DMZ 풍경 시리즈는 태어난 지역이기에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휴전선부근에서의 경험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어렸을 때 작은 카메라를 들고 자유롭게 사진을 찍으러 다녔던 공간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군사적으로 이 곳의 자유를 제한하여, 더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어 진다. 이 제한은 휴전중인 국가의 국방 안보의 문제일 수도, DMZ 안보관광 상품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매번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제한범위가 바뀌는 것을 경험하였다.
2년 전, 국방부 행사로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707op에 방문하였다. 한 군인이 대형 망원경을 통해 눈앞에 둘러싼 금강산을 확대하여 모니터에 보여주며 브리핑하였고, 확대한 금강산에서는 검은 구멍(벙커)이 곳곳에 뚫려 있었다. 촬영이 불가능한 모니터 속 확대한 풍경은 드로잉과 기억에 의존하여 그렸다.
DMZ 풍경시리즈의 초기 작업에서는 캔버스 안에 제한적인 풍경들을 좀 더 사실적으로 담아내 보여주고자 하였다면, 최근 작업은 회화 안에서의 풍경에 대한 심리적인 경험을 상대적으로 극대화하여 표현하고자 하였다.

SATELLITES: 위성들
추미림 Chu Mirim
부유하는 자들의 춤
이성휘(하이트컬렉션 큐레이터)
추미림은 도시의 일상적 풍경을 관찰하여 기하학적인 평면작업이나 설치작업으로 풀어왔다. 그는 컴퓨터 그래픽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픽셀아트 같은 유닛들을 단독 또는 조합하여 도시에서의 일상을 표현해 왔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작가에게 도시의 환경과 삶의 경험들이 작업의 기반이 되는 것은 자연스럽고, 인터넷과 컴퓨터 인터페이스에 익숙한 세대로서 시각적인 사고 과정에 이러한 디지털 매체의 영향을 받는 것 또한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번 갤러리룩스에서 열린 개인전 《Satellites: 위성들》에서는 서울 및 주변 도시의 아파트 단지, 빌딩숲, 도시 간의 진출입로와 주변 풍경 등 도시에서의 일상과 풍경을 다룬 작업들이 소개되었다. 특히 이 전시는 작가가 유년 시절부터 서울의 위성도시들을 맴돌며 살아온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그는 우연히 주민등록초본에서 자신의 주소 변천사를 확인하게 되었는데, 이 내역은 개인의 이동 이력이었을 뿐만 아니라 지난 30여 년 동안 서울과 서울 주변의 신도시 개발, 부동산 정책의 변천사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가족의 삶을 반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전시는 한 개인의 추억으로 머무르지 않고, 대도시 빌딩 및 아파트숲에 둘러싸여 살아온 많은 이들의 경험과 기억, 그리고 열망을 자극한다.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신화를 쫓아 허우적대는 우리 자신과 주변인들에 대한 씁쓸한 경험과 감정까지 떠올리게 만든다. 작품들이나 전시 자체는 작가의 유년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나 도시의 삶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따뜻한 유머가 많이 담겨 있어서 낭만적인 느낌마저 들지만, 부동산을 둘러싼 고단한 현실을 잊게 해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픽셀과 창
추미림은 자신을 도시(오프라인)와 웹(온라인)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으로 표현한다. 도시라는 물리적 환경만큼이나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연결된 온라인 환경이 자신의 삶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는 미술작가로 활동하기에 앞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을 먼저 시작했고, 그만큼 컴퓨터와 인터넷은 그에게 친숙한 수단인데 단순한 도구에 머무르기보다는 일종의 컴퓨팅 사고(computational thinking)를 가능케 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추미림은 자신의 컴퓨터 바탕화면을 일종의 드로잉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작업에 필요한 모든 창들이 열려 있는 바탕화면이야 말로 모든 작업의 소스이자 시작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인터페이스(Interface)>(2020)라는 작품에서 작가는 여러 개의 창과 그래픽 유닛, 그리고 그리드선을 연상시키는 화면을 구성하여 이 화면이 자신의 바탕화면임을 암시하였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모니터 화면 비율처럼 가로로 긴 방향으로 캔버스를 사용했다면 훨씬 더 직접적으로 컴퓨터 바탕화면을 연상시킬 수 있었겠지만, 작가는 세로 방향으로 캔버스를 사용했고 그 크기가 웬만한 방의 창문 크기만하기 때문에 오히려 건물의 창을 대입해서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캔버스 속 그림들은 창을 통해서 내다보는 도시의 구획과 건물들처럼 보이며, 이 또한 작가의 드로잉북인 컴퓨터 바탕화면에 펼쳐 있는 것이기에 자연스러워 보인다.
사실 창이라고 하는 건축 공간의 프레임은 추미림의 작품 화면에서 유용한 프레임이 되는데, 건축물의 외관이나 창에서 따온 기하학적 도형이 화면의 조형적인 요소이자 내러티브의 틀이 된다. 이번 전시에서 추미림은 아파트 단지 입면도와 같이 연출한 <캐슬(Castle)> 시리즈(2020)를 선보였다.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를 연상시키는 작품제목은 부동산에 투영되는 계급의식을 상기시키지만, 그 안의 내용은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작가의 낭만적인 공상으로 채워져 있다. 정사각형, 직사각형, 평행사변형, 삼각형 등 다양한 크기의 도형이 도형자처럼 재단되어 있는 산뜻한 색상의 아크릴 커버는 빌딩숲이나 아파트 단지의 외피이자 이야기의 프레임이다. 각 도형마다 건물 내외부에서 목격할 만한 장면이나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는데, 어떤 이미지들은 스마트폰 채팅 어플의 이모지(emoji)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호에 가까운 그림들도 있기에 구체적인 내용을 일일이 추측하지는 못하지만, 전체적으로 온/오프라인 속 삶의 일면이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다. 이와 비슷하게 영상작업 <윈도우즈(Windows)>(2020)에서도 정사각형, 직사각형, 계단형태 등 여러 모양의 창을 만들고 각 프레임마다 그 형태에 맞춰 애니메이션 영상이 돌아간다. 이 영상 속 이미지들도 건축물과 컴퓨터의 창을 통해 볼 수 있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파트 단지, 네비게이션 위성 지도 화면, 혜성의 궤도, 이모티콘 같은 이미지들이다. 이 영상 중에서 작가는 위성지도를 픽셀이 다 보일만큼 확대한 장면을 보여주는데, 이는 다분히 의도적이다. 그간 추미림의 작품은 간결한 도안이나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컬러링 때문에 컴퓨터 그래픽 출력물로 오해를 받은 적도 있다. 특히 그의 평면 작업은 픽셀에서 출발한 회화로 소개되곤 하는데 마치 디지털 원안이 있는 것처럼 오해를 살 수 있다. 그러나 전시 작품들 중 화가의 손이 아닌 마우스로 그려진 디지털 이미지는 이 영상이 유일하다. 다른 평면 작업들은 작가가 손맛 가득하게 종이 위에 그리고 칠한 아날로그한 작업들이다. 한편, 그의 회화를 픽셀에서 출발했다고 말할 때 종종 ‘픽셀 = 정사각형’이라는 선입견도 포함되곤 한다. 엄밀히 말하면 픽셀은 정사각형으로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래픽 화면상의 포인트로 디지털 그래픽 화면의 최소단위일 뿐이다. 하지만 픽셀이 연상시키는 비트맵 이미지와, 흔히 픽셀이 깨졌다고 표현할 때 이미지 해상도가 떨어지며 생기는 격자무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픽셀을 정사각형으로 간주한다. 이 픽셀을 추미림은 대도시 건물의 창과 연결 지어 도시의 일상을 투영하는 창으로 확장한 것이다.
부유하는 자들
이번 전시에서 추미림은 서울의 위성도시들이 개발될 때마다 이사를 다니며 목격한 위성도시의 조건과 환경, 그 곳에서의 생활에 대한 기억을 작업에 투영시켰다. 알다시피 위성도시는 대도시의 기능을 분담하는 주변 도시를 일컫는 표현으로 중심 도시의 인구를 분산시켜 주거를 분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 대도시 주변의 소도시들은 도시 기능이 자족적이든, 의존적이든 대개 위성도시의 지위에 있는 편이다. 특히 서울의 경우, 1990년대 분당, 일산을 시작으로 하여 불과 30여 년 만에 신도시라 통칭되는 위성도시들이 우후죽순 개발되었다. 이 시기 수도권에서 성장한 추미림은 부친의 직장 및 부동산 투자 계획과 맞물려 이사와 전학을 거듭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만 했다. 그는 성남, 분당, 수지 등 자신이 이사 다녔던 신도시들의 풍경이 획일적인 도시계획 하에 일사천리의 속도로 조성되었음을 지적하며, 이 인위적인 도시들에 정착하지 못하고 정서적인 유대감도 획득하지 못한 채 부유하듯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유년 시절을 회상하였다. 그의 <스윗 섹션(Sweet Section)>(2020)은 대한민국 부동산 판타지의 종착지인 서울을 연상시킨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실제 서울보다 훨씬 느슨하고 여유 있는 부감 형식의 이 작품은 핑크색으로 칠한 바탕 때문에 이곳이 정말 달콤하고 안락한 도시일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작품 좌우로 걸려 있던 <아이시 문(Icy Moon)>(2020)과 <더 래빗 홀(The Rabbit Hole)>(2020)은 서울과 연결된 위성도시에 대한 작가의 단상이다. 획일적인 도시계획은 작가에게 토성의 얼음 위성 안셀라두스처럼 냉정한 온도로 기억되었고, 지역 주민들만 아는 도시와 도시를 잇는 지역의 작은 통행로는 주민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플라이어.002(Flyer.002>(2020)는 지워진 슬로건과 말풍선 자리에 위례, 미사 등 어떤 도시의 아파트 단지 개발에 대한 광고문구를 갖다 붙여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서울과 주변 신도시의 관계를 행성과 위성의 관계로 치환하여 생각했고, 이를 전시장 디스플레이를 통해서 시각적으로 제시하였다. 전시장 벽면에 걸린 작품들은 행성 주변을 도는 위성들처럼 몇 개의 곡선과 점들로 서로 연결되었는데, 작품들의 몽상적인 분위기로 인하여 각각의 캔버스는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별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중에서 부유하는 듯한 느낌은 <인터체인지(Interchange)>(2020)가 특히 강하다. 도시와 도시를 잇는 도로의 교차로를 표현한 이 작품은 회전 구간을 진입하거나 빠져나갈 때의 부드럽고 산뜻한 기분이 상상되는 작품이다. 공중에 떠 있는 듯 둥글게 조경이 된 나무들과 회전도로, 그 위에 오버랩 된 교차로 화살표들은 마치 앤디 워홀의 <댄스 다이어그램(Dance Diagram)>(1962)처럼 한 편의 안무를 연상시킨다. 회전도로를 따라 떠다니는 원들처럼 공중에 부유해 있는 상태에서 추는 산뜻하고 가벼운 춤이다. 서울, 주변 신도시, 어디에서도 쉬이 자리 잡기 힘든 사람들이 차라리 공중으로 부유해서 추는 춤이다. 전세난민, 호텔거지와 같은 말들이 난무하는 오늘날, 이 도시 어디에도 두 발 딛고 살 곳이 마땅치 않다면 차라리 중력을 이기고 공중 부양을 하는 상상이라도 해보는 것이다. 영화 <주피터스 문>에서 난민 수용소를 탈출해 쫓기다가 공중 부양을 하는 초능력을 가지게 된 주인공처럼 말이다. 사실 추미림은 전시장 한 켠에 자기 자신을 투영한 <버블 워킹(Bubble Walking)>(2020)을 걸어 두었다. 버블 속 캐릭터는 즐거워 보인다. 씽긋 웃는 얼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그는 큰 보폭으로 버블을 굴리며 걷고 있다. 이 버블은 부동산 버블이 아닌, 서울과 위성도시 어디든 자유롭게 부유할 수 있는 버블이다. 현실보다 조금 높은 공중에서 부유한 채로 추미림을 걷게 해주는 버블, 그 산뜻한 걸음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고단한 현실에서 상상으로 라도 춤이 되기를 바란다.

HOMO SYMPTOMUS 증상인간
사타 SATA
작가노트
나는 과거에 환경과 사람을 통해 받은 정신적인 충격과 트라우마로 인해 유년시절부터 선 밟는 것을 싫어하고 손에 이물질이 묻으면 못 참고 특정 행위를 반복하며 확인하고 숫자에 민감하고 모서리나 난간에 놓여있는 물건들을 불편해하는 등의 강박증, 처음 본 사람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사생활을 허풍으로 부풀리고 차려진 무대를 두려워하고 대인관계를 원하면서도 다가오면 피하는 인격적 장애들과 공포증, 규칙적인 소리에 과민하고 이따금 들려오는 이명에 약을 찾았고 일련의 비슷한 꿈들이 찾아올 땐 그 후 다가 올 현실에 힘들어했고 가족들에 의한 외상후 스트레스성 장애 수면장애 등 수많은 증상들을 달고 살아온 나는 증상인간 그 자체였다. 과거 작업들은 대부분 트라우마를 겪어서 생긴 하나의 감정을 주제로 풀어냈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 현대인들이 정신병 몇 개 정도는 가진 채로 살아간다고 말할 정도로 각종 증상들은 흔하고 만연되어 있었다. 전염병 시대인 지금도 불안과 공포로 계속 새로운 증상들이 생겨나고 있다. 증상이 병이 되려면 그 기준은 무엇이고 증후군 공포 장애 등 명칭을 만든 사람들은 누구일까가 궁금해졌다. 실제 찾아본 자료에서는 극단적인 증상을 기준으로만 판별하기도 했고 가벼운 증상이 정신 질환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단순하게 수줍어하는 수줍음이 병리화가 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각 장애들의 진단기준이 대폭 낮아 지면서 검사 신뢰도에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자료를 토대로 봤을 때 병이라 지칭할 수도 없는 이 증상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고민을 바탕으로 증상을 가진 인간에 관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얻은 결론은 증상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오랜 시간 겪은 환경과 인격이 합해져서 만들어놓은 결과이다 증상은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나만의 고유한 특성이다.
증상이 곧 통증인 것은 아니다. 내가 가진 증상을 받아들이고 인정한다면 증상은 나의 보호막이나 막강한 무기가 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나와 타인을 치유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인간이 느끼는 다양하고 말로 설명 할 수 없는 감정들 까지도 약이나 치료를 통해 해결되어야 하는 병리학적 명칭에 갇히는 것에 동의 할 수 없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에 사람들이 지난 세기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나 증상들을 현시대에 느끼고 그 감정을 토대로 변화를 이루며 정신적인 진화를 거쳐가고 있는 중이다.
만약 당신이 가진 독특하고 고유한 증상으로 힘들어한다면 그러기를 멈추기를 희망한다. 물론 뿌듯해 하며 그 능력을 즐거운 마음으로 누리기를 바라지만 적어도 증상 뒤에 숨거나 증상 때문에 스스로 움츠려 들지 말았으면 한다.
어쩌면 당신은 미래의 HOMO SYMPTOMUS 증상인간이라 불리우는 신인류 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지평선 Event Horizon
이재욱
작가노트
Inner Safety II, 2019
촬영자와 피사체 사이에는 권력이 존재하고, 촬영된 이미지들을 발표하는 데에는 책임이 따른다. 이것은 도덕- 사회적 책임, 그리고 개인적 윤리에 대한 책임 등 세심한 단계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Inner Safety두 번째 시리즈인 이 이미지들은 일반 북한 주민들이 그들의 스마트폰으로 찍은 일상생활의 사진들이며 아직 검열되지 않은 날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북한을 방문하여 촬영한 사진들, 혹은 북한에서 선전용으로 유출하는 이미지들의 순수성에 의문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했으며 허락된 대상과 장소만 촬영하는 것은 통제와 검열의 레이어를 가지고 있는 왜곡된 이미지일 수도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촬영 대상이자 주체로서 그들이 찍은 이미지를 수집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 작업은 단순히 미지의 북한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며 대상화되는 우리 사회 일부의 위험성에 대한 연구이다.
Grade X Exposure, 2020
Grade X Exposure 시리즈는 흑백의 극단적 대조를 통한 사유적 긴장을 유도한다. 또한 X Exposure는 현실의 부정, 사건의 폭로 그리고 레이어의 중첩을 뜻한다. 중앙정보부 본청, 안기부 6국, 경호원 기숙사…
50여 년 전 남산 도처에 자리 잡았던 수십여 채의 건물들은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해야만 했던 곳”으로서 현재의 나에게 훼손된 권력의 상징으로 존재한다. 거꾸로 장착된 Sunset filter는 더는 풍경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핏빛으로 차오른 서슬을 상징한다. 나는 지금은 일상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옛 안기부 건물들을 마주하며 잘못된 역사의 순간들이 이제는 무명의 목격자들처럼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아버지의 시대로부터 From The Father’s Times
이선민 Lee Sunmin
작가노트
오래된 공간, 기억의 시간들
<아버지의 시대로부터> 작업은 오랜 시간동안 한 가지 일을 연금해온 노년 남성들에 대한 초상 작업이다. 사진 속 인물들은 다난한 한국의 근현대사가 변화무쌍하게 펼쳐졌던 시대를 연금술사로서 또 아버지로서 살아낸 이들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번 <아버지의 시대로부터>의 작업은 격랑의 시대를 살아온 노년 세대에 대한 초상인 동시에 이들이 연금한 기술과 가치와 그 살아온 시대를 이들 스스로의 서술을 통하여 반추하는 기억하기의 시간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 작업의 시작은 2015년 <연금술사>란 가제를 가지고 출발하였다. 디지털화와 기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모든 것이 속전속결로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오랜 시간 한 땀 한 땀 손으로 정교한 기술을 연마하며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능숙한 연금술사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보고 싶었다. 현자를 찾아가 질문을 던지는 순례자처럼 이들이 연금한 것들을 직접 바라보고 그들이 붙잡은 가치에 대하여 또 지금까지의 삶의 여정은 어떠하였는지 들어보고 싶었다. 무슨 질문을 하고 또 무슨 대답을 들을지는 미지수였다. 막연히 그들의 오래된 작업 공간에서 그동안 나의 윗세대와 나누지 못했던 오래된 궁금증들에 대해 질문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던 것이다.
첫 만남은 3대째 수제맞춤 양복점을 경영하고 있는 테일러 이경주님이었다. ‘종로 양복점’이라는 가게 이름처럼 종로에서 대대로 양복점을 운영하고 있는 분이었다. 처음 양복점을 방문했을 때 장식장에 걸려있는 양복들보다 그 위에 나란히 세워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촬영을 마치고 인터뷰를 하며 두런두런 그의 과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50년 동안 양복을 만들어온 그에게 그 기술을 가르쳐 준 것은 그의 아버지였다고 한다. 그가 독립할 때 본가로부터 들고 나온 것은 달랑 종로양복점이라 쓰인 간판 하나였다. 그에게 양복 만드는 기술은 부모에게 받은 유일한 유산이며 동시에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가업의 계승이라는 책임감보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더 절박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그 말 속에 그가 감당해야했던 것들이 묵직한 무게감으로 전해졌다. 또 한 가지 인터뷰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할아버지는 일본에 있는 양복 학교에서 양복을 배웠고 그의 아버지는 만주에 있는 유명한 일본 양복 회사에 취직하여 양복 기술을 배웠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가 태어난 곳은 만주였고 해방이 되자 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돌아와 할아버지가 하시던 종로 양복점을 운영했다고 한다. 이렇듯 그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 하에서 일본으로 만주로 이주를 감행하며 기술을 습득하고 가족을 부양하며 가업을 세워갔던 것이다. 이 종로 양복점의 연대기가 연금술사라는 작업의 가제를 <아버지의 시대로부터>라는 제목으로 변경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태어난 년도를 물었을 때 그는 자신을 해방둥이라고 소개하였다. 평범하게 보이는 그의 테일러로서의 삶은 이러한 시대의 영향 아래에 놓여 있었고 결혼하여 이사를 10번이나 다니면서도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종로 양복점의 간판만은 계속 가지고 다닐 정도로 이 ‘종로 양복점’이라는 말에는 그의 전 삶의 정체성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이번 작업을 함께한 인물들은 1930년대부터 1950년대 사이에 출생한 세대들이다. 해방 전후로 출생하여 전쟁을 실제로 경험한 세대이며 이들이 독립하여 직업을 가지고 결혼하고 자식들을 키우며 살아온 60, 70년대는 굵직한 정치적 사건들로 얼룩진 시기였다. 해방과 전쟁, 혁명과 쿠데타, 유신 등 요즘 젊은 세대들은 역사 교과서에서나 접한 사건들을 이들은 몸으로 겪으며 살아온 세대이다. 그렇기에 이들이 겪은 전쟁과 가난과 이주의 기억들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들 뇌리에는 여전히 생생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이번 작업의 인물 중 88세로 최고령자인 1932년생 김원하님은 14살 때 일본에서 해방을 맞았고 바로 고향인 포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18살에 6.25 전쟁이 발발했고 비행기 폭격으로 집의 유기공장이 모두 불타버려 온 가족이 경주로 피난을 떠났다. 20세에 장남으로서 6남매를 대표하여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하여 생계에 도움이 될 약학을 전공한 후 서울로 상경하여 제일향료회사와 종근당에 근무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45년간 황학동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서울로 이주하여 경제활동을 시작한 30살 무렵인 1960년대에는 4.19혁명과 5.16 군사쿠데타를 목격하였고 70년대에는 유신과 대통령 암살, 12.12 군사 쿠데타를 목격했으며 80년대에는 광주항쟁과 민주화 항쟁과 대통령 직선제 등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지나왔다. 이 모든 시대적 사건들을 겪으며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중학교 때 6.25전쟁이 일어나 집이 폭격 당했던 일과 기차에 매달려 피난 갔던 일과 고등학교 때 남의 집에 입주하여 과외를 하며 고학했던 때라고 대답했다. 종로 양복점 이경주 사장님도 6.25 전쟁이 일어나 온 가족이 피난 갔던 일이 살면서 가장 기억나는 사건이었다고 회상했다. 이것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당시 5살 어린 아이였음에도 아직도 그 기억이 너무나 생생하다고 하였다. 이렇듯 이 노년 세대들에게 ‘전쟁’과 ‘가난’, 그리고 ‘이주’라는 키워드는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자 극복해야 할 절박한 문제였다는 것이 작업을 함께한 분들의 공통된 진술이다.
10여 년 전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도 이 분들과 비슷한 1935년생이다. 나의 아버지도 <아버지의 시대로부터> 작업의 인물들처럼 전쟁과 가난을 겪었고 홀 홀 단신 고향인 부산에서 서울로 이주하여 낯선 땅 서울에서 생존을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았다. 이처럼 ‘전쟁’과 ‘가난’, 그리고 ‘이주’라는 키워드는 <아버지의 시대로부터> 모델이 된 노년 세대들에게 공통분모와 같은 기억이다. 1999년부터 2004년에 걸쳐 작업했던 초기작 <여자의 집> 사진에서는 명절에 모인 여러 세대들의 시선은 서로 만나지 못하고 교차한다. 그 수평을 달리던 시선들이 이번 노년 세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비로소 사진가의 눈에 보이고 들려지기 시작하였다. 이 세대는 이러한 시대적 환경을 극복하는 데에 온 에너지를 집중하고 생활인으로서 가장으로서 좌우 돌아볼 겨를 없이 앞만 보고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세대였구나 하는 생각에 미치기도 하였고 ‘취미도 못 가져봤고 이거저거 돌아보고 살 정신없었다. 는 말속에서 이 노년 세대들이 통과해야 했던 절박한 삶의 여정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였다.
<아버지의 시대로부터> 작업은 사진 속 노년의 인물들이 평생에 걸쳐 연금한 일들과 지켜온 가치와 그 살아온 시대를 조명하고 있다. 수 십 년의 시간이 응축된 그들의 공간과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공간과 하나가 된 듯 익숙한 이들의 모습들 그리고 그 공간을 채운 오래되고 손때 묻은 물건들을 하나하나 응시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오래된 물건들과 평생 연금한 기술과 가치가 어떻게 다음 세대로 흘러가는지 그들의 시간을 천천히 따라가 보려 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진이 올려진 테일러 이경주님의 장식장 안에는 이들에게 전수받은 기술로 만든 양복들이 차곡차곡 걸려 있다. 이것들을 배경으로 서있는 노년의 테일러를 바라보며 그가 전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몸으로 부딪치며 겪어왔던 세월을 생각한다. 또 그가 지켜온 것들은 무엇일까도 생각해 본다. 켜켜이 책이 쌓인 건축가의 오래된 서가와 50년 동안 광장시장을 지킨 유비상회와 그 안에 수북이 쌓인 원단들, 성수동 금속 제조 공장에 빽빽이 쌓여있는 수많은 물건들과 커다란 시계, 4대째 이어온 대장간의 망치 등 이들의 오래된 오브제들도 천천히 바라본다. 종로 양복점과 유비상회 사장님의 50년을 이어오고 있는 오래된 우정도 떠올려 본다. 컴퓨터도 없었고 기계화도 되지 않았던 시절 몸과 손으로 일구고 지켰던 이들의 시간들이 이 공간에 가득히 흐르고 있다. 나의 아버지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손에서 손으로 전수한 정신과 기술들도 함께 말이다. <아버지의 시대로부터> 작업은 마치 오래된 서가에서 한 권 한 권 책을 꺼내 읽듯 천천히 이 이야기들을 읽어가려 한다.
이렇듯 이번 <아버지의 시대로부터> 작업은 노년 세대들의 시간을 기억해주는 작업이다. 이들 노년 세대가 감당해온 삶의 내러티브와 그 기억이 담긴 공간을 응시하고 경청하는 것이다. 1996년 <황금투구>란 제목으로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 나는 아버지를 시이저에 비유하여 바라보았다. 25년이 지난 지금 내 딸이 그 당시의 나의 나이와 비슷해질 제법 많은 시간들이 흘렀다. <아버지의 시대로부터> 작업은 지금 세상에는 없지만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와 비로소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업을 하며 익숙한 내 아버지의 포우즈와 문장들이 보여지고 들려졌다. 그렇게 나는 나의 아버지의 삶으로 초청되었고 그 시대와 대화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시대로부터> 작업이 아버지의 세대와 동시대의 또 다른 세대들과 나누고자 하는 담론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규철
이규철
이규철(1948-1994, 인천)은 1974년 홍익대학교 미술학부(조각 전공)를 졸업했다. 1975년 사우디아라비아로 출국, 미국 빈넬 회사에서 행정요원 및 영상기사로 활동했다. 1983년 메사추세츠 미술대학 대학원에 진학하였으나 3학기 수료 후 귀국했다. 그는 홀로 시간을 보내며 연구한 작업으로 첫 개인전 «공간과 시지각»(관훈미술관, 1988)을 가졌으며, 이후 정덕영이 기획한 «김성배, 강하진, 이규철 3인전»(갤러리 81-10, 1988), 구본창이 기획한 «사진, 새시좌전»(워커힐미술관, 1988) 등의 단체전에 참여하며 활발히 작업활동을 이어갔다. 중앙대학교 조소과, 서울예술대학 사진과에 강사로 출강하였으며, 1994년 교통사고로 작고했다. 이후 그의 유작은 «사진조각 4인전»(금호미술관, 1996), «한국현대사진 60년: 1948-2008»(국립현대미술관, 2008; 경남도립미술관, 2009), «아주 사적인, 아주 공적인»(국립현대미술관, 2016), «프레임 이후의 프레임»(대구미술관, 2018) 등 국내미술관의 주요한 사진 기획전을 통해 소개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 모란미술관, 베스 갤러리(나고야)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작가노트
1990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중심은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에 마음의 중심을 두며 살고 있는가? 지구상의 모든 생명들은 지구 중력의 중심점을 기준으로 하여 평형감각을 유지하며 지탱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들 삶의 터전인 지구는 이즈음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는가? 우리는 이러한 지구에서 과연 무엇을 가치 기준으로 하여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가? 우리들의 아이들은 어떠한 상황에 던져질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구 중심점과 평형감각과의 관계를 구형체에 담아보면서 우리를, 또 나를 돌이켜본다. 우리는 자연을 어떻게 보는 것일까? 정녕 어떠한 마음으로 어느 길을 가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