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 글
박은혜 (갤러리룩스 큐레이터)
<명랑한 기억>은 단편적인 삶 속에서 의미 있는 순간을 발견하고, 이를 시각이미지로 환원하는 작가들의 작업을 모았다. 그들이 생산한 시각이미지 뿐만 아니라, 작업의 모티브로 작용하는 태도에 주목하고자 한다.
우리는 삶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맺고, 평범한/특별한 사물과 풍경을 마주한다. 인간관계, 일상의 사물과 풍경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에 잠기게 하고, 무수한 말들을 쏟아내게 한다. 무엇보다 그러한 경험에 의해 특수한 감정 상태에 이르게 되는데, 그 감정에 따라 삶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사소하고/ 우울하고/ 고단하고/ 외롭게 느껴진다. 어떤 이는 전자보다 후자의 감정을 빈번하게 느꼈을지 모른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우리가 ‘삶’에 대해 아무것도 간직하지 않은 이미지를 근거로 ‘삶’을 판단하기 때문에 후자를 친숙하게 느끼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무의미한 이미지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유의미한 이미지를 기억하지 못해 삶이 사소하고/ 우울하고/ 고단하고/ 외롭게 느끼는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진단에 따라 처방을 내린다면, 의미 있는 순간들을 흐리지 않게, 밝고 환하게 기억하는 것이다.
시각이미지는 대상을 기억하거나 경험을 보전하기 위해 고안된 방식들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시각이미지를 생산하는 이들은 보통의 사람보다 주어진 삶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망각되기 쉽지만 의미 있는 순간을 포착한다. 반복되는 것과 결코 반복될 수 없는 것들이 공존하는 우리의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생각하고, 반성하는 차원으로 나아간다. 결과적으로 일상이라는 얇은 표면에서 발견되는 미세한 차이와 굴곡을 읽어내 ‘지금-여기’를 보여준다.
‘지금-여기’란 커다란 테두리인 거대담론일 수도 있으며, 미묘하고 개인적인 미시담론일 수도 있다. <명랑한 기억>은 담론의 형태보다는 평범한 순간의 이미지로, 밝고 유쾌하면서도 우울하고 진부하게 다가갈 것이다. 그러나 이를 명랑하게 (흐린 데 없이 밝고 환하게) 시각화하는 구현모, 노석미, 노정하, 사타, 홍인숙의 삶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그들의 삶의 태도를 닮은 시각이미지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며, 또한 우리에게 ‘괜찮다’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우리의 삶은 명확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상투성과 그로부터 오는 우울함을 견뎌내기 위해서 ‘흐린 데 없이 밝고 환하게’ 유의미한 이미지를 기억한다면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선보여왔던 연례기획전 Flux는 끊임 없이 변화하는 지금의 한국 현대미술가의 다양한 입장과 시각을 보여주고자 했으며, 그 일련의 흐름을 읽어내고자 기획되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