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종, The Park, 2013. 7. 24 – 8. 5
흑백 적외선(Infrared Ray, 赤外線) 사진 작품인 ‘공원’은 불교 철학 개념인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무한함을 지니고 있는 빛은 무색(無色) 즉, 공(空)입니다. 그 공 안에 색(色)이 있는 것입니다. 결국 색의 본질은 공인 것입니다.
작품 속 풍경은 인간의 손길이 닿아 ‘조경(造景)’이 된 공원의 ‘차별(差別)’된 풍경과 자연 스스로의 힘으로 일궈낸 ‘무차별(無差別)’의 풍경입니다. 비슷한 공원 풍경을 적외선이라는 인간은 볼 수 없는 광선의 힘으로 그려낸 일상의 풍경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여줍니다. 일상의 현실적 풍경이 비현실적인 풍경으로 낯설어 보이지만 그것이 현실 풍경 속 풍경에 숨어있는 또 다른 현실임을 우린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철학적으로 ‘본다’라는 것은 ‘인식한다’의 의미입니다. 볼 수 있고 그것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고 표현 할 수 있는 것은 신의 축복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시각은 보여지는 사물(事物)의 모습에만 집착한 나머지 나타나지 않는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는 지엽한 시각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사물의 본질을 깨닫지 못한 채 보여지는 것에만 의존하게 되어, 결국 시각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만이 진실이라는 ‘무지(無智)’를 신앙(信仰)하게 되는 오류에 침식되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즉흥적 감각에 의존한 시각만이 아닌, 다양함을 이해하는 안식(眼識, Light sense)을 갖고, ‘어린 왕자’와 같이 ‘마음의 눈’으로 대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현실의 빛’ 과 ‘비현실의 빛’이 상충(相衝)하는 풍경이 아닌, 대상을 소유의 가치가 아닌 공존의 존재로 모두 아우를 수 있을 것 입니다.
양호상, Stereogram, 2013. 8. 7 – 8. 19
학창시절 나를 표현하기 위해 옷을 입었다. 그럼에도 나와 친구들은 같은 잠바, 남방, 면바지, 힙합스타일, 모두 비슷한 패션이였다.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유명연예인 스타일, 명품 등 3~4명의 한 명 꼴로 비슷한 패션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인지 나는 편집적으로 사람들의 ‘패션’을 시선에 담는 버릇이 생겼다.
이런 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패션’, ‘산업’, ‘사회’가 어떤 관계를 갖는지 바라보게 되었다. 산업발달 이 후 대량생산된 ‘패션’은 사용가치보다 미적가치에 비중을 두고, 유행을 통해 발전했다. 이를 통해 ‘패션’은 기본적 의미를 벗어나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중대한 역할을 한다. 패션을 통해 고급과 저급, 미와 추, 부와 가난등과 같은 용어들이 전달되는 사회적 용어가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언제부턴가 우리는 사회적 정체성과 개인의 정체성 구분이 모호해져 살아가고 있다.
‘Stereogram I’은 그 시작점인 산업발달 이후 모던사회까지의 프린팅, 패턴등 다양한 형태로 유행한 ‘패션’을 특징적 역사와 기억을 드러내기 위해 그 당시의 Object를 사진적으로 기록하고 미술적 기법인 Op-Art를 차용하여 표현 함으로써, 패션과 사회를 의심해보고 패션을 통해 사회적 평등화 경향과 개인적 차별화 경향의 타협을 고민해보고자 하였다.
원범식, Archisculpture, 2013. 8. 21 – 9. 2
르네 데카르트는 한 명의 건축가가 이뤄낸 건물의 질서정연함을 아름답다 하였지만, [건축조각] 사진 프로젝트는 여러 건축가의 다양한 설계를 모아 하나의 거대한 조각을 만드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 조각은 자연발생적으로 여러 건축가에 의해 이루어진 고대도시의 유기적 낭만성과 성격이 비슷하기도 하고, 또 다르기도 한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다수 건축가의 건축물에 대한 매우 주관적인 본인만의 미해석이기 때문이다. 사진에 ‘푼크툼’이 있다면 분명 내가 선택한 건축물의 일부 요소는 본인의 진실한 ‘푼크툼’이며 이들의 조합이 바로 [건축조각] 사진이다. 다양한 형태의 건축요소들은 결국 하나의 거대하고 새로운 조각으로 재탄생한다. 또한 [건축조각] 사진 프로젝트는 대도시 ‘판타스마고리아’의 꼴라주다. 다만 인간의 환상, 욕망이 잘 구현된 아케이드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적 환영을 찾아 이를 서로 연결한 하나의 거대한 조형물이다. 감상자는 이 사진들로부터 대도시의 환영을 느낀다. 수집가가 획득물을 조심스럽게 분류하고 정리하듯, 이곳 저곳에서 채집한 도시의 파편들을 분석하여 하나의 조각작품으로 재조립한다. 다양한 형태의 건축요소들은 하나의 거대하고 다양한 역사를 지닌 조각예술로 재탄생한다.
[건축조각] 사진 프로젝트는 따라서 매우 상징적이다. 정치와 경제, 문화의 연관관계, 물신자본주의사회의 건축적 환등상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주기도 하며, 작품에 사용된 꼴라주, 즉 몽타주 기법은 러시아 영화감독 에이젠슈타인이 언급했듯이 각각의 요소들을 충돌시키면서 새로운 의미 즉,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사회현상과 구조를 서술하며 기존의 거대보편구조나 암묵적 상식을 끊임없이 해체한다. 그렇지만 본질적으로 이것은 하나의 거대한,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건축적 조각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