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청진, a delicious dinner or not, 2009. 8. 5 – 8. 11
충분히 매력적인 파스텔계열의 색상. 보송보송한 느낌의 솜사탕을 손으로 뜯어 입안에 가득 넣고 혀로 살짝 살짝 녹여가며 맛을 느끼면 사실 너무 달아 물을 찾게 된다. 입안에 들어간 솜사탕은 처음크기가 상상이 안될 정도로 허탈하게 작아지고 온도가 조금이라도 올라간 상태에서 솜사탕을 손으로 만지면 끈적끈적한 그 촉감이 너무나도 불쾌하게 전달된다. 이러한 솜사탕의 특성은 나에게 있어 중요한 작업의 키워드로 연결시킬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된다. 나의 소유욕은 남들보다 조금은 대단해서 가지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일주일 안에 갖고 만다. 그 습관은 어릴 시절부터 시작되어 지금도 가끔 자제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이런 점은 자연스럽게 음식과도 연결이 된다. 음식에 대한 나의 집착 아닌 집착은 어릴 때부터 시작되었다. 잠을 자다가 꿈에서 특정한 음식이 나오거나 갑자기 어떤 음식이 생각날 경우 그 다음 식사시간이나 다음날 꼭 먹고 만다. 특히 내 경우에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아니 단순히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떡볶이를 먹을 때라도, 이미 뱃속의 과다한 포만감으로 인해 불쾌함이 느껴지지만 마음 한 쪽에서는 이미 음식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불안함과 아쉬움을 느낀다.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이미지들에 집착하며, 부드러운 듯 말랑말랑한 색감의 이미지들로 시작되어 살짝 비꼬는 것 같은 이미지로 끝나는 점, 그리고 각기 그것들이 가진 특성과 사용하는 재료나 매체들은 다르지만 그것들을 ‘김청진의 그림(사진)’으로 만드는 점은 마치 홍상수의 영화와 닮아 있다. 나는 홍상수의 영화들을 좋아한다. 서울 강북의 변두리가 주요 무대인지라 아주 익숙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도 촬영당일 간단한 메모나 감독이 직접 얘기해 주는 이야기들로 배우들이 즉흥연기를 하는 점과 감독 특유의 일상적인 면을 집어내어 더 이상 일상적이지 않고 낯선 느낌을 갖게 하는 부분을 좋아하기도 한다. 그리 논리적이지도 않은 부분들도 많고 이해가 되질 않는 부분들도 있지만 전체의 흐름으로 보아서 이상한 느낌은 받지 않는다. 조금은 촌스러운 듯 연출된 퀵-줌(Quick-Zoom)을 비롯한 투박한 앵글, 단순한 자막들 그리고 그의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인 특정한 특징이 있는 배우도 그렇지 않은 배우도 그의 영화 속에서는 모두 ‘홍상수 식의 배우’로 만들어 버리는 점들이다. 그리고 항상 그의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기대하고 꼭 보는 나는 항상 관람 후엔 기분이 나빠져서 극장을 나온다.
서영철, ….. a one’s walk (걸음걸이), 2009. 8. 12 – 8. 18
공간 속에서의 움직임 그리고 그 느낌마저도 포함된
생물, 무생물, 흔들림, 멈춤, 빠름, 느림 등…
하나의 걸음걸이로 모아진다.
지나온 걸음걸이로 말미암아 역사가 이루어졌고,
앞으로의 걸음걸이는 어떻게 이루어져 갈까?
설레임과 더불어 새로운 걸음을 내디뎌본다.
성정원, 일회용 컵, 2009. 8. 19 – 8. 25
언제부터인지 ‘얼마나 많은 일회용 컵을 사용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맞닥뜨려 지게 되었고, 소비 중심 사회에서 대량생산되는 일회용 컵으로부터 물질과 자연에 대해 보다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흙으로, 유리로, 혹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용기를 대신하여 종이로, 플라스틱으로,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진 일회용 컵의 편의성에 익숙해져 버렸다. 2002년부터 일회용 컵의 일회성에 관심을 갖게 된 나는 2004년부터 ‘일회용 컵(disposable cups)’을 주제로 예술적인 경험을 하고 있다.
생활 속에서 직접 사용했던 종이컵을 촬영한 ‘일회용 하루’는 수없이 똑 같은 일회용 컵들이지만, 특정일 특정장소에서 사용한 특정 디자인의 일회용 컵은 어느 순간 유일성이라는 개념으로 다가온다. 단 한번 사용하는 컵은, 역시 단 한번 밖에 없는 내 일상의 하루 중 일부분을 담는 기억인 것이다.
일그러진 일회용 컵 형체를 모티브로 한 ‘무제’ 시리즈는 새로운 시각으로 형태를 바라볼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할 뿐만 아니라 대체된 재료(점토)에 대해서도 나에게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다.
조준용, Powerplant of City, 2009. 8. 26 – 9.1
한 치의 빈공간도 없이 늘어서있는 古건물과 高건물들 속에서 나에게 도시는 낯설면서도 낯익은 삶의 공간이다. 도시라는 공간을 정의한다면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활동이 중심이 되는 장소’이지만, 그 어느 부분에도 속해있 지 않는 나에게 도시란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관찰의 대상이다. 그렇다고 어떠한 사회학적 관점을 두거나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현상을 분석하여 새로운 사실을 전달하려는 목적도 없다. 그저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새로운 공간과 풍경을 찾는 흥미로움으로 나의 작업은 시작되었다. 도시가 보여주는 낯익은 풍경 속에 낯선 공간을 찾는 것은 마치 내방 침대 밑에 있는 다른 세계를 관찰하는 것처럼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다. 나는 이런 관찰자적인 시점으로 도시 속에 존재하는 발전소를 발견하게 되었다. 발전소는 도시에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역할을 하며,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그 에너지를 소비하며 살아가고 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가지런히 진열된 물질화 된 상품을 소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비-물질이지만 물질보다 더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으며, 현대인들에게 에너지에 대한 관심은 시간이 갈수록 높아져 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좀 더 관조적인 자세로 발전소를 바라보기로 하였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대상에 대한 어떠한 사실을 전달하는 목적이 아닌, 낯익은 도시의 풍경 속에 낯선 공간이 갖고 있는 심미적인 특성을 찾아내고자 하는 나의 시각적인 버릇 때문일 것이다. 처음으로 발전소를 보게 되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가쁜 숨을 내쉬는듯한 발전소의 거친 소음과 하늘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수증기를 바라보며, 강렬한 위압감에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한순간 대기 중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수증기를 바라보며 생성과 소멸이라는 살아있는 생명체의 순환적 특성에 대해서 깊이 사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가가지도 멀지도 않는 곳에서 에너지가 생성되고 소멸하는 순간을 바라본다. 그것은 아마도 도시 속에서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비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삶과 같은 모습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