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둡게 빛나는
  • 이소연, 사타
  • 2015. 10. 29 - 11. 22  

기획의 글

박은혜 (갤러리룩스 큐레이터)

 

시각 이미지, 더욱 정확하게 미술은 단순한 시각 정보로 우리들의 망막에 맺혔다가 사라지지 않는다. 미술은 일종의 시각적 경험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감정과 기억을 형성시켜주고, 잃어버린/잊어버린 감정과 기억을 환기해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미술을 바라볼 때, 즐겁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겁에 질리기도 한다. 우리를 즐겁게 하는 미술은 생활에서 직면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과 우울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도피처가 된다. 한편 우리를 겁에 질리게 하는 미술은 피할 수 없는 삶의 비극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준다. 우리가 그것들을 투명하게 직면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더욱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어둡게 빛나는》은 미술의 가능성을 흥미롭게 작동시키는 자화상 작업을 선보여왔던 이소연과 사타의 새로운 작업을 살펴보기 위해 기획됐다. 가장 외면적인 얼굴과 풍경을 독특한 방식으로 다루는 두 작가는 얼굴과 풍경 이면의, 즉 가장 깊숙한 내면에 자리하는 감정과 기억을 환기한다. 이들은 작가 개인에게 한정되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가면을 쓴 것처럼 얼굴을 박제하고, 역사적 맥락에서 벗어난 상상과 경험, 그 중간에 위치하는 풍경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두 작가의 화면은 우리의 시선을 잡아당기고, 우리를 화면 내부에 위치시킨다. 화면 속의 인물이 되어볼 수도 있고, 역으로 화면을 바라보는 “자신”을 바라볼 수도 있게 된다. 그리고 쉽게 접하기 어려운 풍경을 걸어보며, 다른 차원을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소연의 작업은 익숙한 공간에서 낯선 세계로 진입하면서 구체화됐다. 굳이 ‘낯선 세계’라고 말하는 이유는 공간뿐 아니라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까지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낯선 세계의 이방인이었던 그녀는 자신을 돌아보아야만 했고, 자신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직접 대면했다. 화면 중심부에 분홍빛으로 상기된 볼을 가진 어린 소녀가 허리를 곧게 세우고 정면을 응시한다. 그녀의 모습은 묘한 아우라를 지닌 인형처럼 보인다. 호의적인 시선이나 호기심 어린 시선뿐만 아니라 불안한 시선도 그 모습에 가닿는다. “자신”을 바라보고자 했던 어린 소녀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서 바깥으로 시선을, 몸을 이동해가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의 지점은 관람객이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확장시켜준다.

이소연의 이번 신작은 동물가면 연작으로 과거의 화면들보다 더욱 흥미로워졌다. 우스꽝스럽지만 한편으로 공포스러운 동물가면을 쓴 어린 소녀가 연극무대처럼 보이는 장소에 등장한다. 연기를 시작하려는 걸까. 만약 연극무대가 아니라면 저곳은 어디일까. 어린 소녀는 왜 동물가면을 쓰고 있는 걸까. 이렇듯 어떤 것도 정해지지 않고, 단지 어떤 사건이 발생할 것만 같은 긴장감이 화면 전체를 감돈다. 조명 빛이 어린 소녀에게 비춰지면 한 편의 연극이, 또는 결말을 알 수 없는 사건이 시작될 것만 같다.

 

사타는 자신의 상상을 구현하기 위해 사진을 활용해왔다. 먼저 생경한 풍경을 찾아 다니고, 자신이 직접 촬영한 후에 사진을 부분으로 조각 내서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냈다. 그는 이렇게 새롭게 만들어진 공간에 자신을 위치시키며 그것으로부터 기분 좋은 흥분을 이끌어냈다.

이번 ‘SaTARLIT 2015’는 자신이 경험한 우주를 ‘별 빛’으로 환기시켜주었던 ‘SaTARLIT’의 연장선에 놓인 신작이다. 사타는 이제는 찾아 볼 수 없는 현실 풍경 속에서 전구더미를 머리에 쓰거나 빛의 잔상으로 자신의 얼굴을 숨기며 나타난다. 전구더미에 쌓인 얼굴, 빛의 잔상으로 남겨진 얼굴은 어두운 공간에서 실제로 발광하는 ‘빛’으로 시선을 옮겨가게 한다.

사타는 빛에 둘러 쌓였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생각보다 그것은 뜨거웠고 눈이 부셨지만, 온전히 자신만의 공간과도 같았다고 고백한다. 사실 지난한 일상에서 나만의 공간을 점유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언제나 누군가와 공유해야만 하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사타가 경험한 빛으로 가득한 공간은 일종의 도피처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반복적이면서도 무수한 변수가 발생하는 우리의 삶에서 필요한 것은 자신만의 도피처가 아닐까. 이를 사타의 작업에서, 그리고 전시 공간에서 직접 경험해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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